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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rose
제인 해리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는 당대 최고 보이 그룹과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시끌벅적ㅡ, 다섯 명의 또래 남자로 구성된 이 그룹은 누구 하나 가만있질 못했다. 한 사람이 답하고 있으면 다른 쪽에선 치고받고 있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비속어들까지 절·대·통·제·불·가·한·안, 거기에 인기는 어찌나 많은지 스튜디오 밖은 안보다 더했다. 마치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가드들이 있음에도 팬들은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고 있었다. 이들 중 당연 주목받는 인물은 밴드의 리드 보컬을 맡고 있는 해리였다. 요새 들어 해리는 팬들뿐만 아니라 파파라치들에게도 인기 있는 먹잇감이었다.
“해리 씨, 해리 씨!”
한참 멤버들 위주로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인터뷰어가 다급하게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건 매니저가 앞에서 손짓했기 때문이었다. 5분 남았단 신호ㅡ, 그를 본 멤버들은 익숙하게 고갤 끄덕이며 마무리 멘트를 준비했지만 인터뷰어는 달랐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다 갑자기 맥락에도 맞지 않는 말을 꺼냈다.
“자, 그럼 우리 이제 해리 씨, 해리 스타일스 씨의 러브스토리 좀 들어보죠.”
그 말 한 마디에 그곳에 있던 모든 제작진들이 인터뷰어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멤버 전원은 물론 PR매니저를 비롯한 관계자들까지 나와, 인터뷰어와 한 팀인 작가 또한 그를 매섭게 쳐다봤다. 그러나 인터뷰어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실 그에게 이건 단순히 스쳐가는 인터뷰 중 하나가 아니었다. 방송사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어 어렵게 따낸 세계 최정상 보이 밴드와의 인터뷰 기회였고 이 밴드엔 인기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해리가 속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해리가 약혼식도 없이 비밀 결혼식을 올린 후 이제 막 법적 혼인신고를 마치고 신혼 생활 중이었기에 언론사며 잡지사,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해리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중이었다. 이렇듯 해리에 대한 과열된 취재 열기로 소속사 측에선 결혼 관련 질문은 일절 사절, 아예 질문 목록을 만들어 배포한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여러 사정과 사명을 띠고 온 인터뷰어 역시 반드시 해리에게 결혼 생활 관련 질문을 하나는 하고 가야 하니 인터뷰 내내 전전긍긍했다. 건네받은 앨범에 대한 질문을 하고 지켜보는 여러 시선들을 살피다 미처 본 목적을 달성치 못했고 거기에 시간까지 촉박해져 오자 압박감에 못 이긴 그가 안면몰수, 필사적으로 해리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리스트에 없던 질문에 해리는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해리 씨는 그룹 내 유일한 유부남이시죠?”
인터뷰어의 물음에 장내는 해리가 초이스 한 블라우스처럼 핑크빛으로 물들었지만 매니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급기야 인터뷰를 중단하려 했다.
“....유일한, 네, 현재로서는 그렇죠.”
그리고 그를 저지한 건 해리였다. 결혼한 지 반 년이 조금 지난 해리는 그게 뭐 대수라는 듯 답하며. 그러나 참으려 해도 얼굴 가득 만연하는 미소였다.
*시작*
“왜 말을 안 해? 불렀으면 할 얘기가 있었을 거 아냐.”
어릴 적 해리는 지금처럼 부드럽고 능글맞은 소년이 아니었다. 지금 성격의 해리와는 전혀 다르게 심통이 매우 많은 아이였다.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뭐에 그리 심술 난 건지 해리는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답했다.
“그럼 왜 불렀어? 나 간다.”
해리를 바라보던 제인이 등 돌리며 말했다.
“안 돼. 나.. 나 기분 풀릴 때까지 기다려줘요. 풀리면 말할게요.”
“싫어. 계속 그런 표정 짓고 있으면 갈래.”
제인이 겉옷을 걸치자 인상 졌던 해리는 재빨리 제인을 향해 웃어 보인 후 말했다.
“이제... 기다려줄 수 있죠?”
“안녕, 반가워! 네가 제인이구나?”
“네. 안녕하세요.”
“많이 컸네. 반갑다, 정말. 여긴 우리 막둥이 해리야.”
수줍음도 매우 많은 아이였다. 모녀끼리 오랜만에 옷을 사러 간 날이었는데 그날은 정말 신기하게도 길에서 엄마 친구를 만났다. 우연한 만남에 둘은 진한 포옹을 나눴고 옆에 선 제인을 발견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Hello~”
제인이 고갤 돌리자 아주머니 부추김에 못 이겨 약간 어색하지만, 전과 다르게 아주 밝은 미소로 인사해주는 해리가 있었다. 그 모습에 제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후 해리네 집에 초대받은 제인네 가족이었고 제인은 해리가 보이지 않는 가족에 인사 후 바로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를 따랐다. 그리 엄마를 돕던 중 사사건건 딴지 거는 제이크와 다퉜다. 제인이 뭐만 할라 치면 옆에서 별로네, 못하네, 비꼬기에 좋은 말로 그만하라 경고했지만 정도를 모르는 새끼라 제인은 더는 같이 있기 싫어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Hi, Jane.”
그러자 해리가 보였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제인이 거실에 오자마자 어색하게 손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해리였다.
“너 우리 제인이 좋아하지?”
보통의 또래 남자애들이라면 벌써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니라 반박하고도 남았을 텐데 해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부끄러운 듯 웃음으로 답을 대신할 뿐이었고 해리가 그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에에에~ 해~리~는~ 바보래요~! 바보래요~”
동네 잔디밭 한가득 쨍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왜... 바..보야..아...?”
거북이처럼 느릿느릿ㅡ 의기소침한 목소리도 함께.
“냬..걔.. 왜... 뱨..보..얘...? 느림보니까! 느림보니까 바보지! 말을 그렇게 느리게 하는 사람이 어딨냐?”
“해~리~는~ 바보래요~!”
“바보래요~! 바보래요~ 에에에~~”
해리가 한 마디 하자 아이들은 열 마디 했고 그 목청은 더욱 거세졌다.
“...바보... 아냐!”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에 해리는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에에에~ 이것 봐. 맞잖아~! 에에에~ 해리는 울보래요~ 울보래요~”
“바보! 울보!”
그러나 아이들의 놀림은 그치지 않고 더욱 심해졌다. 그때 조금 성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쟤가 왜 바보야? 제삼자가 봤을 땐 친구 놀리는 네들이 더 멍청해 보이는데?”
“뭐? 말도 느리고 저렇게 울기나 하는데 쟤가 바보지! 왜 우리가 멍청해? 네가 멍청하니까 그렇게 보이나 보지. 흥!”
“말 느리고 우는 게 바보야? 그럼 네들은 얼마나 잘났는지 확인해 봐도 돼?”
어디선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해리를 두둔해준 건 제인이었다.
“흥, 당연하지!”
제인의 도발에 우두머리인지 한 아이가 제 키보다 한 뼘은 더 큰 제인 앞에 다가와 콧방귀 뀌며 답했다. 겁도 없이 아주 기세등등하게.
“해봐! 해봐!”
“그래. 그럼 계산해 봐. 구 곱하기 삼십일은?”
제인의 문제에 가장 앞에 섰던 아이는 땅에 구와 삼십일을 새겼고 제인은 쓰ㅡ윽 발로 흔적을 깨끗이 지우며 말했다.
“똑똑하다며 암산으로 해야지^^.”
그러자 아이는 우물쭈물하며 의기양양하게 맞추던 제인의 눈을 피했다.
“못 하겠지?”
제인은 아이를 가소롭게 보던 눈을 거두고 해리를 바라보며 최대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물었다.
“이름이.. 해리라고 했나? 해리, 맞지?”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야, 구 곱하기 삼십일이 뭔지 알아?”
제인은 해리에게 소리 내 물은 뒤 해리만 볼 수 있는 입모양으로 또박또박 이백칠십구를 외쳤다. 아주 필사적으로.
“....이백..칠..십..구....”
그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해리는 눈물을 삼키며 답했다.
“봐, 너네보다 해리가 더 똑똑하잖아. 말이 느리다고 바보면 난 바보 할래. 해리랑 같은 똑똑한 바보!”
제인은 호통치듯 말했고 아이들은 창피함에 그대로 달아났다. 그들이 꽁무니 빠지게 달려 사라지는 걸 확인한 제인은 몸을 돌려 해리 쪽으로 다가갔다.
“후-, 이제 갔네.”
“근데 너 바보야? 울긴 왜 울어? 네가 진짜 바보라도 돼?”
제인은 숨을 돌린 뒤 해리에게 말했다. 제인의 호통에 기죽은 해리는 숙인 고개를 더 숙이고 가로저었다.
“근데 왜 울어? 울면 그 말 인정하는 거밖에 더 돼?”
해리는 안 그래도 서러운데 흥분해 자길 나무라는 제인을 눈물 가득 찬 눈으로, 원망하듯 바라봤다.
“다음부턴 울지 마. 말이 느린 건 부족한 게 아니라 신중하고 특별한 거야. 그리고 별로 느리지도 않잖아! 그냥 좀 천천히, 좀 느긋하게 말하는 거뿐이지. 그게 매력이 될 수도 있고!”
제인은 연두색 바탕에 노란 병아리와 흰앵초가 수놓아진 손수건을 꺼냈다.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트릴 듯한 눈으로 자길 올려보는 해리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고 끝엔 아이들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아주 방긋 웃어 보였다.
제인과 해리는 그날 처음 만났다. 해리네 옆 블록 살던 제인은 오빠 제이크가 던진 야구공을 찾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해리네 블록까지 왔었고 억울하게 당하는 해리를 발견해 불의를 못 참아 달려왔던 것이다. 그렇게 해리는 자신보다 키도 크고 똑똑한, 또 자기와 달리 아이들을 멋지게 무찌르던 제인에 반했다. 소설에나 등장할 만한 이야기처럼 첫눈에 말이다.
“천구백구십사 곱하기 이 곱하기 일은, 이렇게 이렇게...”
이후 제인은 해리의 수학 선생님이 됐다. 고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무슨 선생님이냐 하겠지만 제인은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해리 엄마의 부탁으로 시작된 일이었고, 제인은 일주일에 서너 번 해리네 집에 드나들며 해리의 수학 공부를 봐줬다.
“너 우리 제인이 좋아하지?”
“어.. 네..? 아.... 아..니.. 아.. 쪼끔.. 쪼끔.. 그런 거 같아요...”
“아이구... 우리 아들.. 어쩌나? 아직 성인도 안 됐는데 벌써 마음에 상처 입겠네.”
부부가 쌍으로 애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제인 엄마의 짓궂은 질문에 해리가 답하자 바로 제인의 아빠가 거들며 말했다.
“해리야, 제인이 지금 사귀는 사람 있,”
“아빠..!..”
무념무상, 고구마 껍질을 까던 제인은 손에 쥐었던 소중한 고구마를 집어던지고 급하게 아빠의 입을 틀어막았다.
“왜? 싸나이가 이 정도로 상처받진 않잖아, 그치?”
그런데 이 아저씨는 정말 눈치가 없는 건지 없는 척하는 건지 제인의 손을 치우고 더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주둥이 나불거리기, 그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제인은 그런 아빠의 어깨를 때리며 복화술로 말했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Shut up, plz...
“해..리.... 괜찮.. 괜찮...지..?”
그리고 해리 옆자리로 옮겨 앉은 제인이었다.
“...네.”
제인은 미안함에 어쩔 바를 모르며 물었고 해리는 제인의 시선을 피한 채 모닥불만 보며 답했다.
“왜 또ㅡ, 누가 화나게 했어?”
해리의 심통은 중간치 자란 해리가 됐을 때도 여전했다.
제인이 해리네 엄마 부름을 받고 달려와 묻자 입까지 삐쭉 내밀고 아무 말 않는 해리였다.
“그렇게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나 간다.”
“안 돼. 가지 마요.”
“왜? 무슨 일인데?”
“아뇨. 그냥 가지 마요.”
“싫어. 이유 말 안 하면 갈 거야.”
“⊙∩⊙... 그래. 가요, 가. 그러든지, 뭐. 예전 같아도 이랬을까. 만약 내가... 남자..친구여도.. 이랬을까..”
중얼.. 중얼.. 꿍얼.. 꿍얼... 해리의 서운 가득한 말에 제인은 돌아섰던 몸을 돌려 다시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그래. 기다리면 돼?”
해리는 누군가에게 심통 나면 늘 제인을 불러달라 했다. 그 심통이 제인에게 나도 꼭 당사자인 제인을 불러야 했고 어디까지나 그 해당 사항은 제인에게만 있었다. 해리의 누나도 아빠도 엄마도 아닌, 무조건 제인에게 말이다. 해리는 제인의 앞에서만 심술궂게 어리광 부리는 행동을 했다.
“자, 이제 정말 끝! 시험 잘 보고! 성적 잘 나오면 맛있는 걸로 한턱 쏴, 알겠지?”
토요일 오후, 해리가 하이 스쿨에 입학하기 전 제인과의 마지막 과외가 있던 날이었다. 제인은 기분 좋게 책상 위의 교재들을 정리해 일어서며 말했다.
“먹는 거 말고 내일 일요일인데 같이 영화 보는 건 어때요?”
“음,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다. 너 월요일이 시험이잖아. 공부해야지. 그리고 약속 있어.”
“에이~ 메들린한테 살짝 여쭤보니까 약속 없다던데, 괜히 그러지 말고 같이 영화 봐요. 진짜 재밌대요.”
“엄마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정말 약속 있어.”
“그러면 그 약속 취소하고 나랑 영화 보는 건 어때요? 나 이제 하이 스쿨 가는 기념으로.”
“안 돼. 이건 미룰 수 없는 약속이야. 그럼, 음.. 미안하니까 다음에 내가 엄청 재밌는 영화 보여줄게. 괜찮지?”
“네!”
그렇게 오래 붙어있기도 쉽지 않은데 두 가족은 7년을 함께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 해리가 친구들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야, 저기, 제인 아냐?”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앞에 남잔 뭐야?”
친구들 말에 해리가 무심코 본 곳엔 정말 제인이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남자와 함께. 분명 친구를 만난다곤 했지만 그게 남자란 말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목격한 해리는 온 신경을 제인에게 쏟아 이만 가자는 친구들 부름에도 답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일어나 저에게 인사하며 아예 밖으로 나가는데도 해리는 그저 말없이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제인의 테이블에만 집중했다. 혼자 자리를 지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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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
그러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해리가 밖으로 나갔다. 테이블과 의자 끌리는 소리에 고갤 돌리던 제인이 해리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해리의 얼굴을 보곤 뭔가 잘못됐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불러 세우려 했지만 해리는 그대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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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는 불러도 그냥 가더니ㅡ, 무슨 일 있었어?”
“그게... 흡..”
“무슨 일이야, 해리? 아, 시험? 시험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는구나. 아냐, 그거 진짜 별거 아냐. 그냥 형식적인 거라고 말했잖아. 정말 괜찮아. 네 성적이면 이미 통과됐을 거고... 또..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까...”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응...?... 아냐. 거짓말한 적 없어. 너 진짜 가능,”
“나한테는 누나밖... 흡...”
“응...?.. 대체 무슨...?.... 아...! 아..?..”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해리와 계속 헛다리만 짚다 드디어 눈치챈 제인이었다.
“아.. 아니. 그거 오해야, 오해. 걔랑 나, 우리? 아무 사이 아냐. 그냥 친구야, 친구! 걔가 프랑스에서 온 애라 비쥬로 인사한 것뿐야.”
“비...쥬....?”
“어, 비쥬. 너도 알지? 너 프랑스어 배운다며.”
제인의 말에 해리는 멋쩍은지 눈물만 닦았다.
“어.. 네가 혈기왕성한 시기라 질투.. 뭐, 그런 감정 활발한 건 알겠다만, 그래도 우리 적절한 상황...에.. 좀 맞게 하자. 응?”
“그럼 이제 나랑도 해요.”
“뭘?”
“프랑스 친구랑 한 인사요.”
“그건.. 뭐, 그래. 시험 통과하면 그러자.”
제인은 해리를 아이 달래듯 대했고 금세 기분 풀린 해리가 답했다.
“알겠어요.”
해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제인의 대처도 늘 이런 식이었고.
숫기가 없고 무대 공포증이 심하던 해리는 그를 극복하려 애썼고 하이 스쿨에 입학하곤 바로 밴드에 들어가 보컬을 맡았다.
하이 스쿨 밴드라면 누구나 대영광으로 여길 마지막 학기 프롬의 피날레 무대를 맡게 된 해리네 밴드. 막바지 공연 준비로 한창 바쁘고 예민할 시긴데 자꾸 멤버들이 신경 쓰이는 해리였다. 연습에는 열중 안 하고 계속 자길 빼고 수군거리는 게.
“왜? 뭐가 문젠데?”
무시하고 연습에 집중하려 해도 자기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얘기하는 통에 참다못한 해리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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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듣게 된 소식, 첫 이별과 두세 번의 이별 후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던 제인이 대학에서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ㅡ. 내심 제인이 혼자인 것에 안심하고 있던 해리는 상심이 컸는지 당장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공연 준비도 마다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프롬 당일, 공연 전 해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길 보러 온 부모님과 제인네 가족을 만났고 제인이 잠시 자릴 비운 사이, 깃털처럼 가벼운 제인 아빠의 입을 통해 제인이 연인과 불과 일주일 만에 헤어졌단 사실을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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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모든 게 다른 둘이었지만 제인과 해리에겐 딱 하나의 닮은 점이 있었는데 그건 제 감정을 속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해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제인은 우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해리와 대화할 땐 무척이나 밝던 제인이었지만 해리가 무대에 서자 감정을 숨기지 못했고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무대에서 보이는 줄도 모르고ㅡ그런 제인을 보자 자꾸만 눈이 가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는 해리였다.
그렇게 하이 스쿨을 졸업하고 2년의 연애 후 결혼한 두 사람.
해리는 프롬 파티 공연을 계기로 데뷔하게 되고 엄청난 인기 밴드가 돼 토크쇼에도 자주 출연했는데 신혼 초에는 이렇게 제인 이름의 ‘제’자만 꺼내도, 화면에 제인과 함께 찍은 투샷이 뜨기만 해도 부끄러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해리 씨, 결혼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1년이요!”
1년 뒤엔 이렇게 잔망돋게 답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그럼, 마지막으로 해리 씨.”
“?”
“I know, No!”
후엔 인터뷰 중 진행자 목소리톤 변화만 듣고도 제인에 대한 질문일 거 예상하고 천연덕스럽게 대처하고 답할 때는 생각만 해도 좋아서 감정 못 숨기는 연하 남편이 됐다.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그리 호락호락하면 세상이 아니다. 그건 해리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를 두고 불화설이 터지고 근거 없는 추측과 루머가 기정사실화돼 나돌 때였다.
“최근 측근들에 따르면 제인 씨 쪽에서 해리 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진행되던 인터뷰 중 갑자기 들어온 질문으로 싸늘해진 현장과 굳어진 해리 표정이었다.
“이혼이요? 아뇨.”
그러자 심하게 좁혀진 미간으로 단호히 아니라 답하는 해리였고 잠시 인터뷰를 중단한 채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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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 어디죠?”
“네?”
“그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어디서부터 나온 거냐고요.”
어떠한 질문에도 항상 신사적으로 응하던 해리는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가 더욱 푹 꺼트려 진지하게 이혼 얘기의 출처를 물었다.
“아.. 요즘 들어 해리 씨가 인터뷰에서.. 어, 그러니까 결혼... 생활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셔서 항간에 이런 소문이 난무.. 불거지,”
“하.. 아, 예. 뭐..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데, 아니에요. 그들이 추측한 것과 전혀 달라요. 우린 해피해요.”
당황한 인터뷰어가 얼버무리며 답하자, 그를 끊어버리고 답하는 해리였다.
“제 말은.. 단지.. 지금은 제 앨범이 아닌, 저희 앨범 홍보를 위해 나왔으니까요. 저와 제.. 가정에 초점이 맞춰지는 걸 원치 않을 뿐이에요.”
“해리 씨, 그럼 끝으로 곤란한 질문 하나만 드릴게요.”
3년 뒤 솔로 앨범이 나온 해리였다.
“곤란, 곤란이라면 제 와이프에 관한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사실 그건 곤란이랄 게 없어요. 저흰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니까요.”
지금껏 능청스럽게 답하던 해리는 와이프란 단어 하나에 바로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저번 인터뷰 때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3년이 지난 지금도 싸운 적이 없으신가요?”
“제가.... 제 와이프랑..요..?”
“네. 결혼 생활이 여전히 신혼 같으신지 궁금합니다.”
해리의 되물음에 인터뷰어는 고갤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죠. 저흰 싸울 일이 전혀 없어요. 언제나 와이프가 제 기분을 먼저 살펴주고 제 입장의 얘길 들어주거든요. 그래서 다툴 일이 생기질 않죠. 또 늘 제 잘못이라 싸울 수가 없어요.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활 나누다 보면 전적으로 그녀 말이 옳으니까요. 있잖아요, 그녀는 정말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그냥 어리광 부리는 애송이 남편에 불과하고요. 어쩔 땐 어떻게 저를 감당하나 모르겠다니까요.”
행복한 해리의 길고 긴 답변이 끝나자 스태프들은 다들 파안대소했다. 그러나 술술 답할 때와 달리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닫은 해리였고 그가 웃지 않자 무안해진 인터뷰실도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만든 것과 동시에 깬 것 역시 해리였다.
“잠깐만요. 이 인터뷰, 편집 없이 그냥 나가나요?”
“네. 전부 다요.”
“그럼 이제 그만해야겠네요. 제 와이프가 이걸 보면 더, 이제부턴 말을 좀 아끼... 제가 좀 함구해야겠어요.”
진지하게 고민하던 해리가 다시 찾은 미소로 엉뚱한 얘기를 하자 인터뷰실은 또 한바탕 뒤집어지고 웃음바다가 됐다.
“쟤 또 컨디션 왜 저래?”
“연락이 안 된대.”
“제인?”
“ㅇㅇ.”
앨범 녹음으로 외국에 나와 있는데 제인과 연락 안 돼서 애타는 해리ㅡ, 직접적으로 제인 때문이라 말은 안 했지만 녹음도 안 풀리고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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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예고 없이 활짝 열린 녹음실 문 뒤 제인이 서프라이즈라 일부러 연락 안 하고 왔다 놀래키면 언제 심기 불편했는지 금세 함박웃음 짓고 눈 녹듯 사그라드는 제인에 대한 원망이었다.
또 제인이 서프라이즈라고 뮤직비디오 마지막 촬영 날, 촬영장에 케이크 사갔을 때 좋아 죽는 척, 분명 예상했으면서 말도 안 된다며 깜짝 놀란 척해주는 해리였다.
연속선상에서 제인이 해리를 응원한다고 회사에 휴가를 내고 투어 준비 구경 가면 주객전도돼 정작 해리가 응원하러 온 제인 얼굴 구경하기 바빴다.
“제 와이프는 가끔씩 제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해줘요. 그런데 절대 그럴 리 없단 걸 알면서도.. 저는.. 제 말은.. 음... 저는 늘 속아요. 그리고 매번 불안에 떨며 속앓이하죠.”
토크쇼에 나가서도 서프라이즈 일화 얘기하곤 제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많이 불안했다며 여전히 투정 부리는 해리였다.
“그럼, 너무 으스대지 않게 흉 하나만 보자면요?”
“흉이요?”
“네. 아내분의 단점 하나만 꼽자면요.”
“흉... 단점.. 흠.. 그럴만한 게 없지만, 음..”
해리는 한참을 고민한 뒤 답했다.
“음.. 제 와이프는 요리할 때 온도 조절... 그러니까.. 불 조절이 조금 서툴러요.”
“쉽게 음식을 태운다는 뜻이군요.”
“네. 그렇지만 이건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제가 요리하는 걸 그만큼 좋아하고 즐기니까요.”
“방금 그 말, 괜찮으신 거죠?”
“...?..?!”
인터뷰어 말에 순간 멈칫한 해리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방금 하신 말로 인해, 나중에 저희가 연예면에서 해리 씨 기사를 접하는 일이 생기진 않겠죠?”
“아니, 그니..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게 낫잖아요. 그리고 완성된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
“네, 알겠습니다. 방금 전 해리 스타일스 씨의 개인적 발언과 저희와는 아무런 상관 없음을 알려드리면서, 이상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해리가 방금 한 답을 급하게 수습하려 애썼지만 인터뷰어는 장난스레 해리의 말을 끊어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한가득 품은 미소로. 장난인 걸 알지만 그래도 후환이 두려운 해리였다.
.
.
.
“어때?”
평화롭게 차를 마시며 주말 아침을 맞던 해리에게 뜬금없이 날아든 질문이었다.
“응? 뭐가?”
해리는 소파에 앉은 채 잘생긴 얼굴로 제인의 물음이 뭔지 물었다.
“나랑 사는 게 어떠냐고.”
“응? 갑자기?”
“어.”
“으음~ 뭐라고 답할까?”
장난기 꽉 들어찬 얼굴의 해리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제인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무섭게 물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물을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요리 실력은 형편없는 와이프와 사는 건, 어때?”
“응?.. 뭐.. 방금 뭐라?... ...봤어? 봤다고? 어떻게?.. 아직... 방송되기도 전,”
그제야 상황 파악해 기다란 속눈썹이 달린 낙타 눈,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욱 확장돼 또다시 동공 지진 일어난 해리였고 심히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몰랐어? 자기 와이프 작가잖아. 동기가 보내줬지. 그러니까 이제 답해. 요리 실력 꽝인 나랑 사는 게,”
“너무 좋지~♥”
인터뷰 영상 본 제인이 자기 놀리는지도 모르고 제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파에서 호다닥 달려와 와락 안겨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하는 해리였다.
결혼 초 공개되지 않았던 인터뷰 영상
“약혼도 않고 덜컥 결혼부터 하셨는데, 아직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중대한 사안을 바로 결정 내릴 수 있었죠? 혹시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으셨나요?”
“딱히 그런 사정... 이유랄 건 없었어요. 질문이 무슨 의민진 알겠어요. 임신, 뭐... 그걸 말씀하고 싶으신 거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아니에요. 그저 저흰.. 서로에게... 그러니까.. 우리 관계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신중한 선택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하고 보내드릴게요.”
“이미 질문 하나는 끝난 거 같은데요?”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한 해리는 빠른 눈치로 개구지게 물었다.
“아, 안 돼요! 이번이 정말,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직도 결혼 생활이 행복하신가요?”
“네.”
해리는 짧게 답한 후 일어나려 했지만 붙잡혀 다시 앉았다.
“정말 처음 좋아했던 마음, 그대로 변함 없으신 거죠?”
“이제 그만 물어보세요. 당연하잖아요. 다시 태어나도 그녀와 결혼할 거라고요.”
결혼 4년 차 해리에게 어김없이 들어온 결혼 생활에 대한 질문에 부끄럽게 답하며 행복에 겨운 해리이이이이ㅣㅇ♥♥♥
제인 얘기만 나오면 감정 숨기지 못하는 해리로ㅠㅠㅠㅠㅠㅠ 해리사랑해!!!!!!!!!!!!!!!!!!!!!!!!!!!!!!!!!!!!!! 실은 그냥 사심 듬뿍 짤 남발... 위한... 글...
제목이 프림로즈인 이유는 해리 탄생화 앵초 (Primrose)이며 공교롭게도 첫사랑이 꽃말인 탄생화도 흰앵초 (Primrose)라서 그렇습니다!
*끝*
“지금 결혼하신 분이 해리 씨 첫사랑이라던데,”
“Yeah~ 헤-헷!”
“첫사랑과 결혼하셨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제 와이프.. 제인 누나는 제 첫사랑이고... ...언제까지나 제 사랑일 거예요.”
해리는 스튜디오에 작가로서 참석해 앉아 있는 제인의 얼굴을 확인한 뒤 조금 부끄럽게 답했다.
아아아아아아ㅏ가가각해리야고백해고백해줘!!!!! 사랑한다고 고백해줘!!!! 거지같이 청혼해도 그게 너라면 무릎 꿇고 받을게!!!!!!!!!!
끝으로 루이 미치게 사랑합니다!!! 루이를 해리 놀리는 나쁜 우두머리로 넣었는데 그냥 짤줍다가 너무 귀여워서 넣은 거예요♥ 구구절절... 루이해리 사랑해♥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내용은 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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