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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dreamer/No ser algo

조슈아 바셋A히어로 파인즈 티핀/T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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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s



 

슈아 제인 티핀 헤르만

 

 


 

 

“아, 제가 왜요?”

 

 

 

 


 

 

  아주 신경질적인 음성이 텅 빈 복도를 가로질러 반대편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멀대같이 큰 키에 흑빛 갈색 머리칼, 짙은 눈썹, 검은 교복 바지 위 입은 검정 라이더 재킷. 모든 게 어두웠지만 단 하나 눈동자만은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색을 띤 티핀이었다. 그리고 그의 푸른 눈 가득 채워진 반항은 모두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왜긴 왜야, 인마. 네가 지각을 밥 먹듯 하고 성적도 아주 개판이니까 그런다.”

 

 

  골치 아픈 건 베니시오도 마찬가지.

 

 

 

 

 

“그럼 하던 대로 청소나 시켜요. 그거면 되잖아요. 냄새나게 이런 곳을 왜,”

 

“이것 봐라? 네가 그런 요구할 처지야?”

 

 

 

 


 

“너는 내가 학교 좀 놀러 다닌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나본데,”

 

“뭘요?”

 

“맨날 땡땡이 까고 다른 애들 시켜서 청소하게 하는 거, 모를 줄 알았어?”

 

 

  날카롭게 노려보던 티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죄 없는 바닥만 퍽퍽, 차댔다.

 

 

 

 

 

“할 말 없지? 없을 거다. 네가 인간이면 있음 안 되지. 잔말 말고 여기서 애들이 푸는 문제 받아 적기나 해. 그걸로도 너한텐 충분히 도움 될 테니까.”

 

 

  미스터 베니시오는 학교에서 제일 꼭대기 층, 복도에서도 맨 끝에 위치한 그야말로 우중충하고 암울한 교실에 들어가지 않으려 끝까지 버티는 티핀을 어거지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

 

 

  자비 없이.

 

 

 

 

 

“얘들아.”

 

 

 

 


 

  티핀은 욕 대신 탄식했고 문제 풀이에 집중했던 이들은 베니시오 소리에 일제히 고개 들어 둘을 쳐다봤다.

 

 

 

 

 

“얘가 어제 말한 걔다. 뭐든 네들 마음에 안 드는 행동하면 즉시 연락하고 다들 고생해.”

 

 

  베니시오는 제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서둘러 나가며 말을 마쳤다.

 

 

 

 


 

“그럼 간다. 내일도 늦지 마.”

 

 

  티핀이 들어선 곳은 전교생이 무시하는 수학 올림피아드 멤버들로 꽉 들어찬 교실이었다. 슈아를 빼고. 얘네가 학교 위상을 높여주는 건 알지만 그들을 보니 그는 웃음도 나지 않았다. 티핀은 눈알과 고개를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돌리더니 절망, 했다.

 

 

  젠장, 지랄맞게 똑똑한 애들이다. 티핀은 벌써부터 지루하다 생각하며 책상 위에 앉았고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그들을 구경했다. 여기서 구경했단 표현은 결코 교실 안의 이들이 흥미로워서가 아니다. 정말 할 게 없어서 봤다는 소리다. 잠시 잠깐 휴대폰을 봤다고 퇴근한 베니시오를 바로 소환한 그들이었기에.

 

 

  티핀은 아이들 대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거기서도 최고로 존재감 없는 멤버인 제인이 가장 마음에 안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동양인 멤버 중 한 명일 뿐인데 그는 콕 집어 그녀가 싫었다. 언제나 조용했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어서 예전부터 반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애였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또 틀린 걸 못 참았다. 조용히 앉아 있다가도 한 번씩 아무도 몰랐던 부분을 집어내 정확한 답으로 정정하곤 했는데, 여기서도 그러고 있었다. 티핀은 그런 제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큰 이유는 없었다. 안 그래도 평소 멀리하던 부류와 의무적으로 한 공간에 갇혀, 그들이 문제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고 풀이 기록이나 하는 이 찌질한 일을 맡은 것도 열받는데 한 번씩 끼어들어 흐름을 끊어놓고 제 시간을 잡아먹는 그녀가 그 입장에선 절대 반가울 리 없었을 뿐이다.

 

 

 

 

 

“야, 곱슬머리, 대충 하고 그만 가지?”

 

 

  한 문제를 가지고 슈아와 제인이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티핀이 둘의 말을 끊어냈다.

 

 

 

 

 

“뭐?”

 

 

  드물게 제 얼굴에 인상을 쓴 제인이 물었다. 그건 제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티핀을 잘 알았다. 제인이 아무리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굳은 신념과 믿음을 가진 신자라도 줄곧 자길 무시하고 다른 애들을 시켜 비겁하게 뒤에서 놀려대는 그가 마음에 들 린 없었을 테니까.

 

 

 

 


 

  슈아는 제인의 나섬이 뭐 볼 게 있다고 그녀 옆에 앉아 걱정 반 호기심 반 어린 눈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난 저 곱슬머리한테 말했어.”

 

 

  티핀은 슈아를 향해 턱짓했다.

 

 

 

 

 

“우리 둘이서 얘기하는 중에 네가 끼어들었잖아. 그러니까 나도 너한테 이유 물어볼 권리 정돈 있다고 보는데?”

 

“헣, 그래. 네 둘이 별것도 아닌 걸로 이십 분 넘게 씨름하고 있는 게 짜증 나서. 네들 때문에 벌써 사십 분이나 늦어졌거든.”

 

 

  그는 어이없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아, 시간 초과. 그럼 먼저 가.”

 

 

  찰나 티핀의 눈엔 빛이 비쳤다. 제인의 말이 끝나자 그는 순식간에 받아 적던 종이와 펜을 내려놓고 걸터앉았던 책상에서도 일어났다.

 

 

 

 

 

“네가 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문 앞에 던져뒀던 가방을 들고 물었다.

 

 

 

 

 

“어, 가도 돼. 미스터 베니시오한테 전할게. 가야 될 시간이 됐는데도 문제 풀이가 안 끝난다고 벌받으러 온 애가 대충 마무리하라 닦달, 압박했다고─그래서 없는 게 낫다 판단해 보냈다고 말이야. 사실 그대로, 정확하지?”

 

 

  재수 없게 싱긋 웃는 얼굴로 제인이 말했고 그는 가방을 집어던진 후 종이와 펜을 다시 집었다. 그리고는 애꿎은 종이를 구기며 화를 삭였다. 별 이유가 없었다는 건 취소다. 저랬다, 쟤는. 다른 애들한텐 착하게 굴면서 저에게는 말 한번 곱게 한 적 없었다. 그래서 티핀은 제인이 싫었다.

 

 

 

 

 

 

*

 

 

 

 

 

 

“오늘은 이걸로 끝. 다들 수고 많았고 내일 보자.”

 

 

  클럽 마스터가 일어나자 하나둘 멤버들도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맨 마지막으로 일어선 건 제인이었고 그녀가 열쇠를 챙겨 문밖으로 나가려 할 때 누군가 제인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렇게 돌아가는 어둡고 짙은 새까만 머리통과 동그랗게 올려 묶은 머리. 돌아선 그녀 모습에 제인의 손목을 쥔 티핀의 입은 얼어붙었고 그녀의 모습을 머리칼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제 눈동자에 새기며 바라봤다. 각인이라도 하려는 듯.

 

 

 

 

 

“뭐야?”

 

 

  하지만 이내 제인이 까칠하게 물었고 그는 웬일인지 쉬이 답하지 못했다.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데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얘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솜털이 남아있는 건지, 어느새 남자가 된 저랑은 다르게 너무도 앳된 얼굴을 하고 있어 굳어버렸다. 분명 인상을 쓰고 있는데도 말갛고 유치원 때와 같이 단정한 교복 차림의 동양 여자애.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늘 멀리서 대강 뭘 뒤집어 써 미간 접은 모습만 보던 애라, 이렇게 생긴 줄은 몰랐다. 이렇게 자란 줄 몰랐다.

 

 

 

 

 

“할 말 없으면 이 손 좀 놔줄래?”

 

 

  티핀이 답하지 않자 제인은 잡힌 손목이 아픈지 팔을 비틀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베니시오한테 똑똑히 전해. 끝까지 남아서 전부 기록하고 갔다고. 두 시간이나 초과됐지만 말야. 그리고,”

 

“그리고?”

 

 

  그제야 정신 차린 티핀이 입을 열었다. 말을 하다 말고 뜸 들이는 통에 그녀가 또다시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봤다.

 

 

 

 

 

“넌 나한테 잘해야 될 거야. 내가 네 비밀 하나 알고 있거든.”

 

 

  제인의 이맛살이 접히자 티핀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고 천천히 손가락을 펴 놓으며 말했다.

 

 

 

 


 

“이건 아까의 답례고.”

 

 

 

 


 

  그리고는 제인이 나서려던 문을 제가 먼저 빠져나갔다. 그녀를 기분 나쁘게 훑어보고는.

 

 


 

 

 

 

  그날 밤 티핀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제게 돌려지던 순간, 그때는 마치 그의 머릿속에서 슬로우 모션 버튼이라도 눌러진 듯 서서히 진행됐다고─하나하나, 모든 게.

 

 


 

 

“야,”

 

 

  점심시간이 막 끝난 오후 1시, 헤르만은 누군가를 부르며 그 앞에 섰다. 그러자 헤르만의 친구들과 복도에 있던 모두가 상상 가지 않는 조합인 둘에게 주목했고 헤르만의 입이 열렸다.

 

 

 

 


 

“넌 사람 말이 안 들려?”

 

 

  티핀은 이번 기회에 저 볼품없이 조그만 수학 어쩌고 동양 계집애의 버르장머리를 바로잡아줘야겠다 싶었다. 매번 복도 끝, 울려 퍼지는 곱슬머리 남자애와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었으니까. 어제 일도 그렇고.

 

 

 

 

 

“들려. 왜?”

 

 

 

 


 

“너네 존나 시끄러워. 알아?”

 

 

  그래서 헤르만을 움직였다.

 

 

 

 

 

“뭐래.”

 

 

  헤르만의 유치한 트집에 제인은 코웃음 치며 옆에 있던 슈아를 보며 말했다.

 

 

 

 

 

“이 복도가 네들 거야? 전세라도 냈어? 마늘 냄새나니까 작작 웃으라고. 아니면 입을 닫고 웃던가.”

 

 

  그러자 헤르만은 슈아를 향한 그녀의 시선을 몸으로 막고 나름의 비하 발언을 했다.

 

 

 

 

 

"웃‘던’가가 아니라 웃‘든’가겠지. 선택형이잖아. 그리고 네가 저 복도 끝에서 걸어왔는데 내 마늘 냄새가 거기까지 났다고? 너 무슨 사이코패스야?”

 

 

 

 


 

“마늘 냄새 얘기하는데 사이코패스가 왜 나와?”

 

 

  제인에게 딱히 악의가 없던 헤르만은 말을 다 끝내기 전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없는 냄새를 어떻게 맡고 와? 난 마늘 싫어해서 네들이 환장하는 알리오 올리오도 안 먹는 사람인데.”

 

 

 

 


 

“응?”

 

“너 망상허언증 있냐고.”

 

 

 

 


 

“없어.”

 

 

  헤르만은 그냥 이 상황이 재미졌다. 매일 당하기만 해서 조용할 줄 알았던 제인의 지지 않는 말빨도 싸기지도.

 

 

 

 

 

“잘 됐네. 그럼 마늘 냄새는 네가 날 수치스럽게 하려는 의도였던 듯싶은데, 전혀 타격 없었어.”

 

 

  재수 없다─.

 

 

 

 

 

“할 말 끝났지? 아니더라도 수업 있어서 이만 가볼게.”

 

 

  그렇게 갔다. 진짜 재수 없게. 제인이 떠나자 구경꾼들도 흩어졌고 친구들만이 헤르만의 곁에 남았다. 헤르만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두드리며. 그러나 헤르만은 그들을 치워냈다. 그리고는 라커 앞에 인상 쓰고 기대서 있는 티핀에게 팔을 두르며 쟤 웃긴다고 이제 우리도 가자 말했다.

 

 

 

 


 

“뭐야, 저 새끼?”

 

 

  하지만 그는 헤르만을 지나쳤다.

 

 

 

 


 

  그럼 그렇지. 내가 저런 싸가지한테 이성적 감정이 들 리 없잖아. 쟨 그냥 재수 없는 동양 꼬마 앤데? 어젠 시간도 늦었고 공기도 더럽게 탁한 교실에 너무 오래 처박혀 있어서 그런 거야. 이게 나지. 어젠 그냥 머리가 돌았던 거야. 그리 생각을 정리한 티핀은 다시 무리 속에 섞여 들었다.

 

 


 

제인이 지금까지 참았던 이유는 단지 그와 엮이기 싫었을 뿐이었다.

 

 


 

 

“아, 진짜…,”

 

 

  어제 일은 오늘 일로 전환됐다. 당한 게 있으면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티핀이라 어제 당한 걸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흡, 제임스…,”

 

“장난칠 기분 아닌 거 알지?”

 

 

 

 


 

“알지. 괜찮아?”

 

 

  제인의 찬 반응에 슈아는 바로 코에서 손을 떼고 물었다.

 

 

 

 

 

“당연히 아니.”

 

“우선 이거 입어. 어제 빨아서 냄새도 안 나고 어차피 나는 체육 안 하니까.”

 

“고마워.”

 

 

  슈아는 가방에서 제 체육복을 꺼내 건네며 말했고 제인은 건네받은 체육복을 들고 빈 교실로 들어가며 답했다.

 

 

 

 

 

“그건 그렇고, 어제 받은 문제지는 다 풀어봤어?”

 

“어? 어.”

 

“거기 문제 좀 이상하지 않았어?”

 

“아니이, 어디 가?”

 

 

  교실 앞에 선 슈아가 물었고 체육복 바지에 다리를 넣던 제인이 낑낑대며 답했다.

 

 

 

 

 

“3번. 답이 안 나오던데?”

 

“별로 이상한 점 못 느끼겠던데.”

 

“왜, 그 식에서 ‘-’가 빠진 거 같지 않아? 그게 아니면 답이 안 나올 리 없잖아.”

 

“무슨 소리야? 답 4번이잖아.”

 

 

  슈아 옷을 입어 품도 크고 기장도 긴 소매의 제인이 교실 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아니. 나는 안 나오던데?”

 

“실수한 거 아냐? 이거 내가 꼭 나올 문제라고 누누이 말했고 저번에 체크도 해줬잖아. 풀이 줘봐. 봐줄게.”

 

 

  그 애는 모르겠다는 투로 말한 뒤 자연스럽게 제인의 손을 잡아 올렸다. 이미 나오기 전 걷어 붙어 고정한 듯 보였지만 얄궂은 소매는 다시 내려와 말하는 그녀의 손을 반 이상 덮은 상태였다. 슈아는 살짝 위 허공에 제인의 손을 뒀고 제 두 손으로 그녀의 헐렁한 소매를 알맞은 길이로 접어주며 꾸짖음을 들었다. 제인에게 물을 뒤집어쓰는 일은 흔했고 슈아에겐 그걸 지켜보는 게 일상이었다. 늘 웃으며 지나쳐가는 그 무리도 그랬다. 잘 나간다는 애들이 유치해서는.

 

 

 

 

 

 

*

 

 

 

 

 

 

“뭐냐?”

 

 

  그날 티핀의 집 앞에는 제인이 서 있었고 바이크에서 헬멧을 벗은 티핀이 물었다.

 

 

 

 

 

“네 행동 진짜 비열한 거 알지?”

 

 

  그러자 울타리 벽에 기대섰던 제인이 등을 떼고 그 앞에 다가서 말했다.

 

 

 

 

 

“뭐? 바이크 타고 집에 오는 거?”

 

 

  이 상황이 우스운지 티핀은 너스레 떨며 물었고 제인은 무시했다.

 

 

 

 

 

“매번 남들 시켜놓고 뒤에 숨어서 웃는 그거, 진짜 비겁해.”

 

 

  빌어먹을, 이런 모든 일의 소행은 티핀이 지시한 게 분명했다. 제인이 된 통 당하고 고개를 들면 항상 실실 쪼개는 무리와 티핀이 있었으니까. 솔직히 그가 전교권에서 노는 제인을 말로는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건 무식한 티핀이어도 아는 사실이었고. 반대로 행동력과 악질함은 그가 한수 위였다.

 

 

 

 


 

“너만큼은 아니라도 나 꽤 똑똑해. 살짝만 불 지펴주면 될 걸, 왜 내가 직접 나서겠어. 손 더러워지게. 할 말 끝났으면 간다.”

 

 

  티핀은 자세를 낮춰 제인의 검은 눈을 올려보며 말했고 그녀의 왼쪽 어깨를 툭툭, 두 번 두드린 뒤 재킷 지퍼를 내리며 들어갔다.

 

 


 

 


 

 

 

“제임스, 넌 나한테 줄 거 없어?”

 

 

  며칠이 가고 학교엔 달달한 초콜릿 바람이 불었다. 밸런타인데이라고 초콜릿을 잔뜩 받은 슈아가 제인 뒤를 졸졸 쫓아 걸으며 물었다.

 

 

 

 

 

“그렇게 받고도 또 받고 싶냐?”

 

“당연하지. 그래야 화이트데이에 보답을 하지.”

 

“너 줄 건 없어.”

 

“뭐야?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다른 누구 줄 건 있나 보네? 누구야? 나 아니면 누군데?”

 

 

  그녀 말에 슈아는 쏜살같이 달려와 집요하게 물었고 제인은 답 대신 슈아가 손에 쥔 초콜릿을 하나 뺏으려 했다. 그러자 질색하며 안 된다 말하는 슈아였다.

 

 

 

 

 

“와, 치사해. 그렇게 많으면서 친구 하나 주는 게 아깝냐?”

 

“이건 너한테나 나한테 선물해 준 애한테나 쌍방 예의가 아니야.”

 

“헣? 주기 싫다는 말을 참 어렵게 하네. 그거 하나 준다고 여기 이 많은 초콜릿이 사라지냐? 치사 빤쓰다, 이놈아.”

 

 

  그거 하나 주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제인은 초콜릿을 다발로 들고 있는 슈아를 밀치고 자전거에 올라타 마구 페달을 밟았다.

 

 

 

 

 

“그래서, 진짜 나 줄 건 없어?”

 

 

  가는 그녀 뒤에 슈아가 외쳤고 제인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초콜릿 아닌 엿을 날렸다.

 

 

 

 



 

 

  실은 제인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다. 작년의 오늘, 그녀는 이틀 전부터 부지런히 초콜릿을 만들었고 당일엔 가방 속에 넣어 고이 모셔왔다. 둘은 같은 클래스기에 의도치 않아도 제인은 여러 차례 전달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만 쑥스러움이 풍선처럼 커지는 제인이라 쉽게 건네지 못했고 마지막 수업이 있기 전 그녀는 화장실에 들렀다. 타이를 뒤로 넘기고 얼굴이 흠뻑 젖도록 찬물 세안하며 마음먹었다. 용기 내 오늘 안에 꼭 주기로.

 

 

 

 


 

“너 혹시 나 좋아하는 거 아니지, 제임스?”

 

 

  그렇게 불러낸 슈아가 물었다.

 

 

 

 

 

“무…어…? 뭐?”

 

 

  미친, 귀신인가? 제인은 정곡을 찔렸다.

 

 

 

 


 

“아무리 내가 매력적이어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당황한 제인은 말을 더듬었고 슈아는 장난에 취해 물었다.

 

 

 

 

 

“아, 진짜 뭐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잔말 말고 받기나 해. 베니가 너 죽일 거래. 요즘 문제 많이 틀린다고.”

 

 

  장난으로 물은 슈아가 민망하게 제인은 죽자고 달려들어 면박 주듯 답했다. 그리고 재빨리 가방에서 초콜릿이 아닌 공책을 바꿔 집어 건넸다.

 

 

 

 


 

“아, 나한테 풀이 보여주려고?”

 

“왜, 싫어?”

 

 

 

 


 

“아니이, 아니. 절대 이해되지.”

 

 

  매일같이 붙어 다니니 장난인 줄 아는 편한 사인데도 제인은 이 주제에 대해선 그렇게 바보가 됐다. 그날 밤엔 더 바보가 됐고─.

 

 

 

 

 

 

*

 

 

 

 

 

 

“따란~”

 

“그게 뭐야?”

 

 

 

 


 

“귀엽지? 셰니가 선물로 줬어.”

 

“셰니? 내 동생 셰인? 셰인이가 왜?”

 

 

  액정 속 슈아와 곰인형 모습에 당황함이 잔뜩 묻어난 제인의 물음이었다.

 

 

 

 

 

“나한테 고백하던데?”

 

“너한테, 셰인이가, 고백했다고?”

 

 

  누가 들어도 제인의 목소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근데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뭐가? 아무렇지도 않은데. 질문에나 답해.”

 

 

  자기만 인정 안 할 뿐.

 

 

 

 

 

“응. 고백했어.”

 

“그래서…, 넌 받은 거고?”

 

“어.”

 

“너는…, 셰인이 좋아했어?”

 

“뭐?”

 

“좋아했냐고!”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기쁘면 되는 거 아냐? 그리고 날 좋아한다잖아. 싫지 않으니까.”

 

“아,”

 

 

  제인은 멍했다.

 

 

 

 

 

“뭐야? 끝이야?”

 

 

  그래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 귀엽네. 근데 이걸 나한테 왜 보여줘?”

 

“자랑도 할 겸 네 동생이잖아.”

 

 

  내가,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그렇게 제인은 정말 바보천치가 됐다.

 

 


 

 

 

 

 

  달리는 자전거 위 제인은 고개를 저어 모든 생각을 떨쳐낸 후 더 세게 패달을 밟았다.

 

 


 

그날 밤, 슈아는 셰인을 통해 그녀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다. 자기가 산 새 초콜릿을.

 

 


 

 

“야, 네가 왜…, 네가 왜 그걸 들고 있냐?”

 

“왜 들고 있긴, 받았으니까 들고 있지. 바보냐?”

 

“그럼 제임스가 좋아하는 애가 너라고?”

 

 

 

 


 

“당연하지.”

 

 

  슈아가 물었고 리지가 고개를 크게 끄덕여 답하자 그 애 얼굴은 심하게 불쾌해졌다.

 

 

 

 

 

“제임스, 네가 말해봐. 나보다 엘리자베스, 쟤가 더 좋아?”

 

 

  슈아는 몸을 틀어 상대를 바꿨다. 그 한심한 물음에 제인은 한숨 쉬며 가방서 꺼낸 책을 라커에 넣었다.

 

 

 

 

 

“왜 답이 없어!”

 

“무-어가?”

 

 

  그녀가 귀찮아 물었다.

 

 

 

 

 

“야, 진 제인, 우리 지난 10년 우정이 이것밖에 안 돼? 쟤랑은 이제 고작 1년 좀 넘었는데 쟤한테만 준다고?”

 

“대체 무슨 소리야? 너 혹시 내가 너 안 줬다고 이런,”

 

“당연하지. 애초에 쟤랑의 관계가 나랑 비교가 돼?”

 

“야, 너는 임자도 있으면서 왜 그래!”

 

 

 

 


 

“야…, 나는…, 나는 어제 초콜릿도 줬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안 주고 쟤한테만 주냐고. 솔직히 섭섭하잖아.”

 

“뭐가 섭섭해. 내가 안 줘도 너는 쟁여둘 만큼 받았으면서.”

 

“당연히 서운할 만하지. 그거랑 이거랑 같아? 주는 사람이 다르잖아, 주는 사람이!”

 

“참 나;”

 

“로~스트 치킨~!”

 

 

  둘의 무의미한 다툼을 지켜보던 리지가 뜬금없이 말했다.

 

 

 

 

 

“뭐?”

 

“뭐야?”

 

 

  갑자기 끼어든 리지에 둘은 입 모아 물었고 리지는 힘차게 뛰어 두 사람 어깨에 매달리더니 다시 한 번 더 외쳤다.

 

 

 

 

 

“로~스트 치킨!”

 

“갑자기 뭔 소리야?”

 

 

 둘은 리지의 손을 떼며 물었다.

 

 

 

 

 

“아, 됐고! 친구끼리 이런 걸로 싸우긴 뭘 싸워. 치킨이나 먹으러 가자! 아빠한테 전화해뒀어.”

 

 

  리지는 피자 가게 딸이다. 그러나 리지는 피자보다 피자를 시키면 서비스로 배달되는 로스트 치킨을 더 지지하는 사람이었고 둘은 리지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항상 치킨을 공짜로 먹었다. 이렇게 싸웠을 땐 무조건.

 

 


 

 

 

“와-, 곱슬머리 인기 많네?”

 

 

  거짓 환호로 포장된 비아냥, 티핀이었다.

 

 

 

 

 

“무슨 소리야?”

 

 

  자전거를 세우던 제인이 그를 확인하고는 아주 까칠하게 물었다.

 

 

 

 


 

“너 말야. 네가 걔 좋아하잖아.”

 

 

  티핀은 두 짙은 눈썹을 위로 한 번 들썩이며 말했다.

 

 

 

 

 

“뭐? 대체 뭔,”

 

“아까 다 봤거든.”

 

 

 

 


 

“근데 걔, 네 동생이랑 사귀지 않냐?”

 

“뭘…, 뭘 다 봤다는 거야…? 스토커처럼.”

 

“그건 너고. 네가 아까 그 새끼 응원하는 거 다 봤다고.”

 

 

  오전에는 슈아의 농구 경기가 있었다. 그 애는 제 경기에 응원 온 제인에게 같이 점심 먹자 제안했지만 그녀는 셰인과 데이트하라며 자리를 피했고 지금 이 자리에 티핀과 마주 서 있다.

 

 

 

 

 

“그…, 그야 친구니까 당연히 응원했던 거지.”

 

 

 

 


 

“지금 사람 등신 취급하는 거야? 작년에 네가 걔 주려고 초콜릿 만들어서 우리 집 우편함에 넣어둔 건 기억 안 나? 아님, 내가 것도 모를까 봐?”

 

 

  쌰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작년 슈아의 전화로 뒤늦게 둘이 사귄다는 걸 알게 된 제인은 바로 달려나가 그 애의 우편함을 뒤졌다. 얼굴 보고 주긴 힘들 것 같아 그곳에 넣어뒀던. 매일 아침 신문 당번으로 우편함을 확인하는 건 슈아였으니까. 그러나 한발 늦었다. 그녀가 갔을 땐 그곳은 이미 텅 빈 채로 먼지 한 톨 없는 상태였고 제인은 다급하게 전화 걸어 슈아에게 혹시 우편함을 열어봤냐 물었다. 그 애의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었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도 달라진 부분이 없어 안심했다. 그냥 동네 꼬마가 훔쳐 갔겠거니 생각했는데 젠장할, 저 자식이 가져갔었나 보다.

 

 

 

 

 

“그래, 맞다. 슈아는 네 동생이었지.”

 

 

  제인은 하늘이 꺼져 땅에 파묻힐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고 티핀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와, 이거 완전 치정극이네. 자기 동생 남친을 사랑한 언니. 한 남자를 두고 하는 자매 사이의 전쟁. 그냥 막 갖다 붙여도 막장 드라마 제목이잖아?”

 

“그만해.”

 

“뭘? 진행 중인 사실인데.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눈감아줬잖아.”

 

“그래서 이제 말하겠다고?”

 

 

 

 


 

“모르지. 너 하는 거 봐서?”

 

 

  티핀이 가고 남겨진 제인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쟤한테 들켰다. 쟤한테.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내용은 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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